틱순이
  •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맞춰 한국 맨땅에 헤딩했던 일본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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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7-02-17 20:42




2002 한일월드컵을 3년 앞둔 1999년


당시 대통령 DJ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두려움 없이 임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따라 두 차례의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진다.


1, 2차를 통해 영화, 만화 분야에 한해 부분적인 수입이 허용 되었고, 2천석 이하의 가요 공연이 허가 되었다.



그리고 3차 개방을 통해 가요 공연의 좌석 제한을 철폐하려던 DJ 정부는,


한일관계의 우호증진을 위해 정부 차원에서 초대형 일본 아티스트의 내한공연을 추진하기로 한다.


당시 한국 음지에서 인기 있던 일본 가수로는



이미 해체 된 엑스재팬을 위시해




아무로 나미에,




SMAP,




모닝구무스메 등등이 있었으나,


다들 각자의 이유로 공연을 거절하며 섭외에 난항을 겪게 된다.


(상술한 아티스트가 공연을 거절했다는 건 아니다. 그냥 예를 든 것 뿐)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반일감정이 가시지 않고, 정식으로 음반조차 출시 된 적 없는 국가에서 노래를 하겠다는 톱스타가 선뜻 나타날 리가


게다가 '한일 우호관계 증진', '日 가수 최초의 한국 대형공연'이라는 타이틀이 국가적으로 붙어 그 부담감은 하늘을 찌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3차 개방을 6개월 앞둔 99년 12월 31일, 그 제안을 수락한 일본 아티스트가 가까스로 나타나며 3차 개방은 추진력을 얻는데 성공한다.




차게 앤 아스카 (CHAGE and ASKA)


'101번째 프로포즈'의 주제곡 'Say Yes', 'YAH YAH YAH' 등의 싱글 두 장으로만 500만장을 넘게 팔아치우고,


총 판매량은 2800만장을 기록한 일본의 살아있는 레전드.


자국에서의 대규모 투어는 물론이요 아시아 투어 또한 몇 차례 진행한 바 있는 슈퍼스타였다.


차게 앤 아스카는 이희호 여사와의 면담을 계기로 내한공연을 결심하게 되고, 


수익금은 한국여성기금에 전액 기부하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그렇게 실패할 게 뻔한 한 번의 자선공연을 위해,


2000년의 투어를 비롯한 앨범 발매 스케줄을 모두 취소하고 반 년 넘게 내한공연 준비에 매달린다. 


멤버 아스카는, 이 공연을 '용기와 각오, 정열과 경의로 임했다'고 회고한다.



공연은 진작에 확정이었지만,


공연 발표는 3차 문화개방이 이루어진 6월이 되고 나서야 이루어졌다.


대중음악의 성지라고 불리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이틀이었다.


최초의 일본가수 대형 내한공연이라는 타이틀로 많은 홍보가 이루어지리라 예상 되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 했다.



TV광고를 시작할 때는 "일본 노래를 트는 게 말이 되냐"며 격렬한 항의를 받아 광고가 중단 되고,


3차 문화개방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반은 여전히 수입금지였다.


당시의 내한공연은 한국에서보다 오히려 일본에서 더욱 비중 있는 기삿거리였는데,




차게 앤 아스카는, 본인들의 예상대로


한일관계를 양 어깨에 짊어져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민감한 여러 문제를 오가며 줄타기를 할 부담감까지 갖고 말았다.


외려 한국인보다 일본인이 더 많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


그 와중에도 차게 앤 아스카는 꿋꿋이 한일 관계의 가교가 되고 싶다는 책임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침내 입국한 이들.



입국 당시의 뉴스가 당시 차게 앤 아스카 공연을 향한 일본의 관심을 대변한다.



당시 참여연대 사무처장이었던 박원순 사무처장을 만나 기부도 하고


당시의 인터뷰

"아시아 각지에서 콘서트를 열었지만, 가장 가까운 한국에서는 콘서트를 열 수 없어서 아쉬웠다. 시대상 배경으로 콘서트를 열지 못 했지만, 우리 세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 되어 콘서트 도중 '한국에서 꼭 공연을 하고 싶다'고 자주 말했었다"


그리고 공연 당일,


한일 양국의 팬이 반반 씩 모인 체조경기장에서


차게 앤 아스카는 매 노래가 끝날 때마다 노트를 들고 한국어 멘트를 하며 6개월간 그들의 노력을 증명한다.


나무위키에서는 당시의 공연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2분 20초부터


그리고 그들의 또 다른 대표곡, 'On Your Mark'를 시작하기 전


저희는 몇 년 간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공연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 한국에서는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억울하다기 보다는 외롭다는 느낌 들었습니다.


과거에 행해진 사실들은 저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이 사실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고 과거사를 같이 슬퍼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희들은 이렇게 가까운 나라입니다.


저희들은 저희들의 새로운 시대를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오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라고, 한국말로 이야기 한 뒤 노래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자기 파트를 이어가지 못 하고 울음으로 1절을 어영부영 넘겨 버린다.


당시 아스카의 눈물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상당한 화제였는데,


왜냐하면 자국에서는 저렇게 운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스카는 당시의 상황을 "감정이 북받쳐서 눈물이 나왔다"고 회상했다.


'On Your Mark' 시작 전으로 멘트 시기를 결정한 것도,


한일 양국의 관계가 'On Your Mark' (제자리)부터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랬다고.



(비공식적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는 구전 또한 전해진다)






Say Yes 한국 라이브



Yah Yah Yah 한국 라이브



공연 뒤 MBC 뉴스 보도



그리고 차게 앤 아스카는, 귀국하자마자 한국에서의 멘트를 문제 삼은 우익 언론들한테 썰리고 만다.

또한 한국에서도 '두리뭉실 넘어가는 반성 없는 발언'이라고 썰리고 만다.

그러나 그들은,

일개 아티스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한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런 썰림 이후에도 소속사 문제가 겹치며 그들은 점차 하락세를 타게 됐지만

한국에서의 라이브는 여러모로 한국 내한공연사에 남을 수 밖에 없는 전설적인 공연이었다.


*상당부분 나무위키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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